20세기 인류 최악의 비극으로 불리는 '르완다 대학살'은 대체 어떤 이유로 일어나게 됐을까..? 국제관계 전문가 임라원 작가와 함께 떠나는 세계사 여행! 바칼로레아 세계사 아홉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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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여러분은 살면서 공부를 하다가 울어본 적이 있나요? 저는 딱 한 번 울었는데, 제가 울었던 이유는 대학 수업 때 배웠던 르완다 대학살 때문이에요. 르완다는 1994년 4월부터 7월까지 100여 일간 약 80만 명이 사망하는 깊은 상처의 역사를 안고 있어요. 그리고 역사는 이 상처를 르완다 대학살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이 사건에는 놀라운 점이 있어요. 이렇게 학살 그리고 내전으로 고통받은 르완다가 지금은 세계 1위의 여성 정치인 비율을 자랑하는 민주정치의 돌풍이 됐다는 거죠.
오늘 우리가 볼 질문은 이렇습니다. “위기가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가?” 사람마다 바라보는 민주주의의 매력은 달라요. 그러나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 민주주의의 매력은 국민에게 주어지는 ‘참여’라는 기회예요. 왜냐면, 참여는 기본적으로 차별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르완다 대학살의 주요 원인은 부족 간의 갈등이었어요. 그리고 이 갈등은 누군가를 배제하고, 참여시키지 못하게 함으로써 생겨났죠. 그럼, 여기서 질문이에요. 인간은 언제 타인을 배제하고 참여하지 못하게 할까요? 인간은 상대가 나보다 힘을 키워서 나보다 강해질 것 같으면, 배제하고 참여하지 못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르완다의 인구를 살펴볼까요? 르완다에는 크게 세 부족이 있는데, 그것은 후투, 투치, 그리고 트와족입니다. 후투는 주로 농사를 짓고 이들은 르완다 인구의 85%를 차지해요. 반면에, 투치족은 목축업을 하면서 인구의 14%를 차지하죠. 나머지는 트와족이고요.
자, 그럼 이번에는 이런 경우도 추가해서, 한번 여러분이 르완다를 지배했던 벨기에의 정치인이라고 생각해보세요. 벨기에는 1923년부터 1962년까지 르완다를 통치했습니다. 근데 항상 역사를 보면 말이죠, 제국주의자는 절대로 혼자 일하지 않아요. 늘, 식민지에서 자신의 우군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죠. 그럼, 여기서 이렇게 생각해볼게요. 여러분은 인구의 대다수인 후투, 중간을 차지하는 투치, 그리고 소수인 트와 중에서, 어떤 부족이랑 전략적으로 손을 잡을 건가요?
힌트를 드리자면, 이럴 때는 주로 한 사회의 다수가 되는 세력을 막아야만 합니다. 그럼 이 뜻은 뭐죠? 네, 벨기에는 명분을 만들어서라도, 후투를 모든 것에서 배제하고 투치와 손을 잡으면서 식민지를 경영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때문에, 후투는 르완다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지 못했고요.
근데 말이죠. 이미 너무 한쪽으로 숫자가 몰린 사회에서는 아무리 계산을 잘해도 웬만한 정치 전략이 아니고서는, 세력의 균형을 찾는 게 어려워요. 이 말은 즉, 후투가 다시금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1959년에는 혁명을 일으켰고, 이를 계기로 르완다는 후투 세력에 의해 1962년, 벨기에로부터 독립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 그럼 이제 때가 왔는데, 어떤 때죠? 네, 투치를 상대로 그동안의 복수를 하고 차별을 하는 거예요. 바로 이겁니다. 차별을 한다는 건 참여할 기회 조차를 주지 않는 거예요. 즉, 민주적으로 살 수 없고 기본적인 권리조차도 없다는 거죠. 그래서 이 때문에, 당시의 몇몇 투치족은 이웃 국가인 부룬디와 우간다로 넘어갔고, 넘어가지 못했던 몇몇 사람들은 학살당합니다.
근데 이때, 르완다에는 1973년 하비아리마나라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키는데요, 그는 연설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합니다. “후투족은 르완다의 근간입니다. 이 사실은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래서 연설이 굉장히 무서운 거예요. 이 메시지는 후투에게 심리적 자긍심을 주면서, 후투가 르완다의 근간이니 사회의 모범이 돼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모범을 보이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도, 막상 먹고사는 데에 문제가 생기면, 인간은 대단히 본능적으로 돌변한다는 겁니다. 이 말은 즉, 인구 폭증으로 땅이 황폐해지면서 농사를 짓던 후투족이 식량 문제를 안게 됐고, 정부를 향한 불만도 커졌다는 걸 의미하죠. 그리고 이렇게 시민과 정부 간의 사이가 나빠지는 걸 보면서, 이웃 국가로 도망갔던 몇몇 투치족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고요. “음! 드디어 정부를 향한 불만이 극에 달하는구먼! 이쯤 되면, 르완다를 한번 공격해도 되겠어!”
이것이 바로 투치족 난민 조직이었던 르완다애국전선이 1990년 10월에 일으킨 내전입니다. 하비아리마나는 이때 당시 르완다의 대통령이었는데, 그는 프랑스와 벨기에의 지원을 받으면서 르완다애국전선을 몰아내는 데에 성공해요. 근데 문제는, 이 공격을 계기로, 하비아리마나가 엄청난 분노를 느꼈고, 이에 따라 후투 극단주의자들을 자극하기 위해서 '후투 십계명'을 발표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십계명 중 여덟 번째에 해당하는 제8계명은 이렇죠. “후투족은 투치족에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
'후투 십계명'을 본 극단주의자들은 정말 기뻐했어요. 드디어 르완다를 후투족만의 국가로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를 본 UN은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확실히 느끼면서, 하비아리마나 대통령과 르완다애국전선 간의 평화 협정을 추진했어요. 그리고 국제사회로부터 압박을 받은 하비아리마나는 어쩔 수 없이 이 협정을 체결했고요.
그러나 극단주의자들은 협정을 체결한 하비아리마나를 보면서 배신감을 느꼈어요. 그리고선 이렇게 변하기 시작하죠. “역시 아무도 믿어선 안 됐어. 자비를 베풀지 말라고 했지? 그래, 좋아. 그럼 우리가 그냥 하비아리마나도 없애고, 투치족도 없애버리자.”
이것이 바로 르완다 대학살의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그리고 이 원인은 무려 80만 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죠. 이 학살은 1994년 7월 15일, 르완다애국전선이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를 점령하면서 끝이 납니다. 그리고 새로운 리더십으로 등장한 르완다애국전선은 2003년 르완다의 새로운 헌법을 만들면서 여성들에게 의석의 30%를 할당하는 의무할당 조항을 넣어요. 왜냐면, 르완다 대학살로 인구의 70%가 여성이 됐고, 이는 결국 르완다가 여성을 국가 재건에 중요한 핵심축으로 봤다는 걸 의미하죠.
물론, 아직 진정한 민주주의로 발전하기까지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그러나, 위기를 통해 성 인지적 헌법을 만들고, 그 헌법으로 그동안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던 주체들에게 ‘참여’라는 기회를 준 점. 이 점들만큼은 분명 위기를 통한 민주주의의 발전 그리고 새로운 기회의 창출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