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야 놀자에서는 잊혀진 독립영웅의 후손을 찾습니다.
서대문형무소를 찾아가 보았을 때, “잊혀진 독립영웅의 후손을 찾습니다.”을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고 역사야 놀자를 운영중인 유튜브에 게시하기 하였습니다.
남인희(南仁熙) 1914. 7. 7. ~ 미상 | 대통령표창(2019)
비밀결사로 항일의지를 다진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1933년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중 교내 비밀결사 독서회에 참여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박양순(朴良順) 1903. 4. 13. ~ 미상 | 대통령표창(2018)
배화여학교 학생, 3.1운동 1주년 기념투쟁을 전개하다
배화여학교 학생으로, 1920년 3월 1일 김경화등 동료 학생들과 함께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여 만세투쟁을 전개하였다.
1920년 4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연도받았다.
박학준(朴學俊) 1883. 12. 15. ~ 미상 | 애족장(2011)
‘만세운동을 방해 말라’ 일본 경찰에게 경고함
1919년 3월 26일 밤 서울 안국동에서 3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이 일로 체포되어 1919년 5월2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을 언도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설규성(薛奎成) 1898. 12. 11. ~ 미상 | 대통령표창(2019)
마차꾼, 서울 봉래동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다.
마차꾼으로, 1919년 3월 22일 서울 봉래동 공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을 언도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성혜자(成惠子) 1904. 8. 27. ~ 미상 | 대통령표창(2013)
3.1운동 후 1년, 만세운동을 재현한 배화여학교 학생
배화여학교 학생으로, 1920년 3월 1일 학교 교정에서 동료 학생들과 함께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여 만세투쟁을 전개했다.
이로 인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동료 학생 23명과 함께 재판을 받았다.
1920년 4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언도받았다.
양유식(梁柳植) 1883. 4. 7. ~ 미상 | 대통령표창(2012)
종로 한복판에 울려 퍼진 조선독립만세
1919년 3월 23일 서울 종로 4가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이 일로 체포되어 1919년 5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언도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두현(李斗鉉) 1902. 8. 10. ~ 1927 | 애족장(2013)
격문으로 만세운동을 독려한 젊은 미곡상
미곡상으로 1919년 3월 하순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서빙고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했다.
이일로 체포되어 1919년 5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언더받아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수희(李壽喜) 1904. 10. 21. ~ 미상 | 대통령표창(2018)
배화여학교 학생, 3.1운동 1주년 기념투쟁을 전개하다.
배화여학교 학생으로, 1920년 3월 1일 학교 교정에서 동료 학생들과 함께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여 만세투쟁을 전개했다.
1920년 4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언도받았다.
이춘봉(李春鳳) 1900. 2. 8. ~ 1927 | 애족장(2013)
“조선민족이여, 자유독립을 위해 거리낌 없이 나아가라”
1919년 3월 서울 관훈동과 와룡동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독려하는 문서를 배포했다.
1919년 7월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언도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임경숙(林敬叔) 1883. 2. 5. ~ 미상 | 대통령표창(2011)
서울 연건동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한 제지직공
1919년 3월 23일 서울 연건동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1919년 5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언도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김정호(金定鎬) 1884. 9. 26. ~ 미상 | 대통령표창(2011)
우편배달부, 가평 3.1운동의 선두에 서다
경기도 가평군에서 우편배달부로 일하던중 1919년 3월 15일 이유석 등과 함께 가평군 북면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고등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언도받아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었다.
박경식(朴景植) 1882. 10. 7. ~ 미상 | 건국포장(2011)
양주군에서 외쳐 부른 ‘대한독립만세’
1919년 3월 15일 경기 양주군 와부면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언도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김장성(金長星) 1913. 2. 7. ~ 1932. 3. 9. | 애족장(2010)
‘조선총독부 타도’를 외치다 옥고로 숨진 19세 소년
1930년 10월 11일 수원소년동맹원으로 같이 활동하던 홍종근과 함께 격문을 살포할 것을 논의하였다.
1931년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김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던 중 1932년 1월 29일 형집행정지로 출옥했으나, 3월 9일 옥고의 여독으로 순국했다.
문재홍(文在弘) 1895. 4. 19. ~ 미상 | 건국포장(2017)
일본상품 불매운동에 앞장서다
1919년 4월 2일 경기 안성군 이죽면 죽산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을 언도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박광순(朴光順) 1879. 2. 25. ~ 미상 | 애족장(2011)
인력거꾼도 3.1운동의 주역으로
1919년 4월 2일 밤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장원리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을 언도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오순경(吳順景) 1883 ~ 미상 | 대통령표창(2011)
일제의 탄압기구를 향해 돌을 던진 생선장수
1919년 4월 2일 경기 안성군 일죽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요로 징역 8월을 언도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윤상구(尹商求) 1886. 12. 30. ~ 미상 | 건국포장(2016)
부역 일을 내던지고 독립만세행렬 속으로
1919년 4월 1일과 2일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언도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조문삼(曺文三) 1881. 1. 1. ~ 미상 | 건국포장(2014)
안성 이죽면에서 2천여 명을 이끌고 조선독립을 부르짖다
1919년 4월 2일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언도받아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유성옥(柳成玉) 1883 ~ 미상 | 애족장(2011)
전차에 돌을 던져 만세운동의 기세를 올리다
1919년 3월 23일 오후 8시부터 서울 종로 1가에서 1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언도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구금룡(具今龍) 1896. 1. 30. ~ 미상 | 애족장(1995)
연천군 3.1운동의 주역, 소방서 종을 울려 사람을 모으다
1919년 3월 21일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일리 시장에서 조우식, 정현수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확정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김문유(金文裕) 1894. 6. 19. ~ 미상 | 건국포장(2013)
연천의 날품팔이 청년, 만세운동의 선두에 서다
1919년 3월 21일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일리 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언도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나용기(羅龍基) 1858. 2. 7. ~ 1920. 8. 15. | 애족장(1990)
61세의 나이로 연천군 3.1운동을 이끌다
1919년 4월 1일 경기도 연천 일원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고등법원에서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2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소은숙(邵恩淑) 1903. 11. 7. ~ 미상 | 대통령표창(2018)
배화여학교 학생, 3.1운동 1주년 기념투쟁을 전개하다.
배화여학교 학생으로, 1920년 3월 1일 학교 교정에서 동료 학생들과 함께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여 만세투쟁을 전개했다.
1920년 4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언도받았다.
김경도(金敬道) 1886. 12. 17. ~ 1927 | 애족장(2013)
수원 성호면 3.1운동에 앞장서다
1919년 3월 29일 경기도 수원군 오산시장에서 30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 일로 체포되어 소요 및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6월을 언도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남상환(南相煥) 1908. 6. 15. ~ 1933. 4. 19. | 애족장(2007)
옥고로 순국한 경기도 농민운동의 지도자
1930년대 경기도 수원군에서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청년운동과 농민운동을 주도했다.
혹독한 고문으로 폐병, 위장병이 생겨 병보석 출감하였으나, 1933년 4월 19일 순국했다.
정종명(鄭鍾鳴) 1896. 3. 5.~ 미상 | 애국장(2018)
조국 독립과 여성 해방을 열망한 간호사
세브란스병원 간호부양성소 출신의 간호부이며 산파로,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과 사회운동을 전개했다.
1931년 일명 ‘조선공산당공작위원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3년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안희경(安喜敬) 1902. 8. 10. ~ 미상 | 대통령표창(2018)
3.1운동 이후 1년, 만세운동을 재현한 배화여학교 학생
배화여학교 학생으로, 1920년 3월 1일 김경화 등 동료 학생들과 함께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여 만세투쟁을 전개했다.
1920년 4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언도받았다.
서대문형무소와 잊혀진 독립영웅의 후손을 찾아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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